목욕탕 속 사람들

[Layer of 정릉 #02] @25시 찜질방 태영사우나

나는 어떤 공간에 들어가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보고 직관적으로 좋다, 내 취향이다, 편안하다, 별로다, 불편하다와 같은 감정을 언뜻 느낄 수 있다. 보는 순간 근거 없는 직관으로 말이다. 그 공간 안에는 많든 적든 다양한 레이어가 겹쳐 있다. 얼마전 들어간 공간에서, 보는 순간 신기한 레이어에 한동안 멍 때리며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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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바로 정릉동 숭덕초등학교 근처 (나름)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 지하에 위치한 태영사우나 전경.

이곳 여자 탈의실에는 신기한 조형물(?)이 놓여져있다. 환풍기에서 바람이 나오는 것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설치물이다. 설계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남다르다. 그야말로 보는순간 신기한 레이어. (흠..레어어라고 하기엔 어째 좀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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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생활에서 꾸미지 않고 자연인(?) 상태에서 최대치로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곳, 목욕탕. 매일 가는 사람도 있고, 일주일 한번은 꼭 가는 사람도 있고, 절대 가지 않는 사람도 있고. 나는 등을 밀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동생이나 엄마를 만나는 날이면 가는 것 같다.

 

아무튼 여러모로 신기한 곳이다. 먼저, 들어가서 나오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카운터에서 돈을 낸다. (목욕탕마다 다른데 신축이냐 특수탕 갯수에 따라 4000원~9000원 정도, 태영사우나는 5000원. 싼편인 듯)
-> 수건을 받고 탈의실에 들어간다. (몇 년전엔 수건을 챙겨갔었는데 요즘은 수건을 기본으로 주는 것 같다)
-> 옷을 벗고 챙겨온 각종 목욕 도구를 들고 욕실로 들어간다.
-> 목욕을 한다. (몇 년전부터 나는 냉탕와 온탕을 짧게 왔다갔다 하는 코스를 추가했다. 가끔은 달달한 냉커피를 주문하기도 한다)
-> 개운한 몸과 욕실도구를 챙겨 욕실을 나와 탈의실에서 크림을 바르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 *필수:음료를 사먹는다. (ㅋㅋ)

이런 과정을 거치면 나의 경우는 적어도 1시간 30분이 지나간다. 50대 이상의 여성 혹은 자식을 데리고 온 여성들은 훨씬 오래 있는 것 같다. 나의 이모는 월목욕 쿠폰을 끊어 거의 매일 목욕탕을 다니는데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그 안에 존재한다. 온갖 것들을 갖고와 먹기도 하고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 계모임을 연다고 하는 이모의 얘기를 들을 때면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 건가 -_-

남탕에서는 이야기 꽃을 피우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탕에서는 모든 곳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사우나실이 메인이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여러 무리들의 수다를 듣고 있자면 마치 소우주에 온 느낌이다. 자연인 상태에서 온갖 세상만사의 주제가 산소처럼 샘솟는다. 뒷담화와 자식 이야기가 주된 소재이긴 하지만…

 

내가 갔던 목욕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였을까?

4년 전 제주도의 작은 마을을 여행했을 때 갔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목욕탕이 떠올랐다. 4천원을 내고 들어간 그곳은 남자 탈의실과 여자 탈의실 가운데 카운터가 있고 천장은 뚫려있어 서로의 탈의실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리는 생경한 곳이었다. 탈의실도 작았고, 욕실도 정말 작은 그곳에서 외지인은 나밖에 없었다. 계속 두리번 거리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으니까 (ㅎㅎ)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 일을 마친 할머니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이 얘기하는 제주 방언에 나의 집중력을 다 쏟았었던 기억, 무엇보다 생선장사를 마친 듯한 할머니가 욕실로 입장하는 순간 같이 가지고 들어온 그 비린내가 신기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싫진 않았다. 그녀가 몸을 씼어도 비린내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삶 그 자체를 맡은 것 같았다. 목욕탕을 나서면서 괜히 코 끝이 찡해졌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렸다.

나는 집 근처에 목욕탕이 있다면 그 동네의 삶의 질은 어느 정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선입견인 건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씻어도 되는데 굳이 나와 뜨거운 탕 안에 몸을 누일 때 느껴지는 이상하리만큼 시원한 그 감정을 공유하는 일종의 몸으로 느껴지는 커뮤니티 공간이진 않을까? 물낭비,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것 같긴 하더라고 그럼에도 동네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공간이라 생각되는 그곳, 목욕탕.

시원한(?) 그 알 듯 모를 듯한 감정을 공유하는 이 곳이 작은 규모로 오래도록 곳곳에 신기한 조형물들과 함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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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영혼을 일에 쏟고 70%의 영혼은 딴짓에 할애하는 안 평범한 직장인이다. 곧 그 직장을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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